사춘기가 다시 시작된 듯 온갖 고민이 많았다.
인생의 불확실함과 매정함,
그에 비해 너무나 가진 것 없고 평범하기 그지 없는 나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나보다.
서른이란 나이가 그런 나이인 거겠지.
그래서 이번 여름에는 반드시 어딘가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뜨거운 햇살 아래 주룩주룩 땀을 흘리고 걸으면서 '정리'할 수 있는 여행이고 싶었다.
처음에는 스페인에 있는 순례길을 생각했으나 해외에 나가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삼십 년 인생 동안 스스로 여행계획을 짜본 적 따위는 없는 터라...
마침 아는 언니가 지리산 둘레길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생각할 틈도 없이 "나도 데려가요" 라고 외쳤다
그래서 떠난 것이 지리산 둘레길 여행.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은 3개 도와 1개 시 4개 군을 감싸고 있다.
사실 몰랐는데 여행 중에 만난 마을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거다.
전라북도에서 전라남도를 거쳐 경상남도,
하동군, 산천군, 구례군을 거쳐 함양군,
그리고 남원시.
걷다보면 지리산의 그 품이 얼마나 넓고 아늑한지 절로 느끼게 된다.
현재 개통된 지리산 둘레길은 남원시에서 산청군까지로 모두 다섯 개의 코스이다.
주천-운봉, 운봉-인월, 인월-금계, 금계-동강, 동강-수철.
우리는 남원으로 내려가서 산청으로 가는 길을 택했으며
다섯 구간을 하루에 한 구간씩 걷는다는 계획 아래 닷새 동안의 여행을 계획했다.
사실 나는 아무 계획도 안했고, 동행한 언니가 준비한 계획에 그냥 몸만 얹혀서 갔다.
여행 첫째날!!
미리 준비하기 보다는 코 앞에 닥쳐야 일을 해대는 나는 여행 준비도 그 날 아침에서야 했다. 허겁지겁.
닷새 계획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마치 출근 준비하듯이 정신없이 집을 나서고야 말았다. 이런!!
내가 챙겨간 건
닷새 동안 입을 옷과 모자, 신고 갈 운동화 외에 가볍게 신을 슬리퍼, 세면도구, 선크림, 물통과 미숫가루, 버스 안에서 먹을 간식으로 싸 간 옥수수, 메모할 수 있는 수첩과 볼펜, 옷걸이, 우산, 디카.
(정신없는 와중에도 잘 챙겨간 것 같군!!)
사실 무엇보다도 신경써서 챙겨간 것은 걸으면서 들을 음악들.
여행을 마친 지금 준비물에 대해서 평가를 해보자면 일단 옷은 많이 가져갈 필요가 없다.
민박집에서 세탁기를 빌려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옷은 빨아서 말린 후 다시 입으면 된다.
대신에 덜 마른 옷을 가방에 걸고 다니면서 말릴 수 있는 옷걸이를 챙겨주면 되는 것이다!!
여행 경험이 많은 나의 동행자가 알려준 팁!!
옷은 긴팔이 좋다. 아니면 팔 토시를 챙겨가거나.
그리고 간식거리를 좀 챙겨갈 필요가 있더라. 사탕이나 과자 같은 것들.
지리산 둘레길을 따라 마을이 있긴 하지만 슈퍼가 없는 마을도 있고,
때로는 숲길만 꽤 오랫동안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상 의약품과 우비도 챙겨야 한다.
강남 고속터미널에서 남원으로 가는 9시 20분 버스를 "드디어" 탔다.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떠나는구나!!
12시 반쯤 남원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다시 택시를 타고 남원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 근처에서 식사를 했다.
'시골밥상', 소박하지만 배가 고팠던 덕에 맛있게 먹었다.
지도를 준비하지 못한 탓에 운봉읍사무소에 들러서 지도를 얻기로 하고
읍내로 가기 위해 114번 버스를 탔다.
버스에 타자 앉아 계시던 아주머니, 아저씨가 한마디씩 알려주신다.
"지리산 둘레길 왔어여?"
"그라믄 읍내로 가지 말고 저짝으로 가야해"
"거그 주유소 있는 데서 내리믄 되지"
암튼... 많은 정보들이 쏟아졌으나... 사투리를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버스는 꽤 높은 산을 올라 30분 가량 달리고 나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는 첫번째 코스인 주천-운봉 구간을 버스를 타고 넘어와 버린 것이었다!!
서울에서 남원으로 내려오게 되면 첫번째 코스 중간 지점 쯤 오게 된다.
만약 첫번째 코스를 제대로 걷고 싶다면 남원에서 주천으로 버스를 타고 갔어야 하는데
우리는 남원에서 운봉으로 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첫번째 코스를 지나치게 된 것!!
나중에 가시는 분들은 헷갈리지 마시길~
암튼 하루 코스가 줄어든 덕분에 우리의 여행은 나흘로 줄어들었다.
버스를 내려서 길을 물어, 운봉 읍사무소에 갔다.
읍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지리산 둘레길과 관련된 책자들이 비치되어 있다.
여행객들이 많이 오긴 하나보다.
친절한 읍사무소 직원들 덕분에 지도를 챙기도 본격적으로 길을 나섰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분명 지리산 숲길이라고 들었는데...
읍사무소를 나온 후부터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오후 2시의 뙤약볕이 내리쬐는데 뜨거운 아스팔트 길을 걷자고 지리산까지 온 것은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다시 길을 물어보기로 했다. 눈에 띈 곳은 지리산 북부 산악구조대!!
우리를 맞아주신 분은 산악구조대 대장님, 햇볕이 뜨거우니 일단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시더니
동네 설명과 둘러볼만한 유적지를 설명해주셨다.
우리가 지나던 곳은 신기리.
대장님은 햇볕이 너무 뜨거우니 시원하게 걸을만한 곳까지 차로 태워다주겠다고 하셨다.
서울에서 남원에 내려와 채 2시간이 안되는 시간 동안 모든 이들이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조금은 낯설기도.
흠, 어쩌다보니 걸으려고 온 여행에서 계속 차를 타고 이동하게 되었다.
뜨거운 햇볕 맞으면서 걸으려고 온 거였는데...
그래도 대장님의 호의가 고마워서 냉큼 탑승!!
대장님이 내려주신 곳은 시원한 천이 흐르는 비전마을
그곳에 이성계가 세운 황산대첩비와 동편제가 탄생한 국악의 성지 등이 볼만하다며 소개해주셨다.
물론 이런 문화유적을 보는 것도 좋긴 하지만 우리의 취향은 아니었다;;
그 보다는 어딜 봐도 푸르르고 탁 트인 풍경과 밝은 햇살, 선선한 바람... 이런 것들이 더 매력적이었다.
걷기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각자 이어폰을 꼽고 저만의 길을 걸어갔다.
비전마을을 빠져나와 인월리로 가는 길은 숲길이었다.
중간에 이정표를 놓쳐서 옥계호 근처에서 길을 살짝 잃었다.
길을 잃은 김에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옥수수도 까먹고 바람에 땀도 식히면서...
바보 같은 잠자리 한마리가 슥하고 손 안에 들어온다.
숲길을 지나면 다음 마을인 월평마을로 접어든다. 오늘 우리가 자고 갈 마을이다.
표지판 옆에 쉼터에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으면서 쉬었다 다시 출발한다.
다시 고요한 숲길로 접어든다.
갑자기 비가 후두둑 쏟아져서 비옷을 꺼내 입었다. (비옷 꼭 준비하세요~)
숲길을 헤치고 나오면 바로 월평마을 안으로 이어진다.
참고로 최근에 마을 이름이 달오름마을로 바뀌었다고 한다.
마을 정자에 가니 어르신들이 모여 계시길래 민박집을 찾고 있다고 물어보았다.
바로 할아버지 한 분이 자신의 집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할아버지가 알려주셨는데 이 말은 생긴지 30년 밖에 안된 신생마을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을 전체가 깨끗하고 대부분의 집이 민박을 하고 있었다.
여행객들이 숙박 걱정은 안해도 되는 마을이다.
아무튼 이로서 우리는 두번째 코스인 운봉-인월 구간을 지나왔다.
숙박비는 3만 원, 식사를 한다면 1인당 5000원씩 추가!!
그런데 민박집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두 분 모두 몸이 불편하셔서 식사를 얻어먹기 힘든 상황이었다;;;
민박을 하는데 왠지 죄송스러운 기분이 드는...
짐을 풀고, 땀으로 젖은 몸을 씻고 나니... 정말 살 것 같았다!!!!!!!
저녁은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곳으로 가서 추어탕을 먹었다.
여행에서는 맛있는 거 많이 먹고, 먹는데 돈 아끼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마을 정자에 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들어왔다.
그러나 시간은 이제 겨우 9시를 넘긴 상황, 좀 뒹굴대면서 하루를 정리해보다가 잠이 들었다.
첫날의 감상은... 음... 지리산 둘레길 여행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과연 여행과 함께 지고 왔던 마음의 질문들에 대한 답은 얻을 수 있을 것인지 궁금했다.



